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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안 마시고, 겉보기엔 딱히 뚱뚱하지도 않은데 지방간이라는 진단이 나올 수 있을까요. 저는 사촌이 20대에 지방간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알아볼수록 이게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방간 환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20~30대인 지금, 젊다는 게 더 이상 건강의 보증수표가 아닌 시대가 됐습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 술을 안 마셔도 생긴다
사촌이 지방간 진단을 받았다고 했을 때 제가 처음 한 말이 "근데 너 술 마시냐?"였습니다. 그게 당시 제가 지방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의 전부였습니다. 지방간은 음주와 세트라는 생각이 너무 자연스럽게 박여 있었던 거죠.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방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알코올이 간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지방이 쌓여 생기는 방식이고, 비알코올성 지방간(NAFLD, Non-Alcoholic Fatty Liver Disease)은 음주와 무관하게 비만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대사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유형입니다. 여기서 NAFLD란 알코올 섭취 없이도 간에 지방이 5% 이상 쌓이는 상태를 의미하며, 최근에는 대사 이상과의 관련성을 더 강조해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국내 연구에서 나타난 성인의 대사이상 지방간질환 유병률은 24.1%입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성인 네 명 중 한 명꼴이라는 수치입니다. 지방간 진료를 받은 환자 약 41만 명 가운데 20~30대가 8만 2천 명을 차지한다는 현실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사촌의 이야기를 들은 뒤 이 숫자를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대사이상이 지방간을 만드는 진짜 경로
사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소 생활을 들어봤습니다. 달달한 커피를 하루에 두 잔 이상 마시고, 점심은 배달음식으로 때우는 날이 많았으며, 퇴근 후 야식도 종종 먹었다고 했습니다. 운동은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거의 끊긴 상태였고요. 살이 엄청 찐 것도 아닌데 왜 지방간이냐고 억울해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문제는 탄산음료, 과일 주스, 액상 과당이 들어간 커피 같은 음료들입니다. 이런 음료들은 포만감은 거의 주지 않으면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열량을 몸에 집어넣습니다. 흰쌀밥, 빵, 면처럼 정제 탄수화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들어온 에너지를 쓸 기회가 없다는 겁니다. 좌식 생활이 길어지면 남은 에너지는 중성지방으로 변환돼 간을 비롯한 몸 곳곳에 쌓입니다.
여기에 인슐린 저항성(Insulin Resistance)이 겹치면 속도는 더 빨라집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우리 몸의 세포가 인슐린 신호에 둔감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이 상태가 되면 혈당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간에서 지방 합성이 가속됩니다. 사촌이 특별히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지방간이 생긴 배경에는 이 과정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봅니다.
- 액상 과당 음료(탄산음료, 과일주스, 가당 커피): 포만감 없이 고열량 섭취
- 정제 탄수화물(흰쌀, 빵, 면류): 빠른 혈당 상승 → 인슐린 저항성 악화
- 좌식 생활: 에너지 소비 저하 → 중성지방 축적 가속
- 근육량 감소: 에너지를 태울 근육이 줄어 대사 효율이 떨어짐
마른 지방간, 겉모습은 정말 아무 신호를 주지 않는다
사촌이 가장 억울해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살도 별로 안 쪘는데"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봤더니 마른 지방간, 즉 정상 체중이나 저체중에서 발생하는 지방간은 전체 지방간 질환의 20~30%를 차지하는 독립된 아형(subtype)으로 분류됩니다.
서구권에서는 비만형 지방간이 주류를 이루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은 정상 체중에서도 지방간이 발생하는 유전적 위험 인자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른 지방간은 전체적인 비만도가 낮아도 내장 지방이 집중된 복부 비만 체형이거나, 근육량이 감소하는 근감소증(Sarcopenia) 형태로 나타납니다. 근감소증이란 근육 세포 자체가 줄어드는 상태로, 체중이 줄지 않아도 근육 대신 지방의 비율이 높아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간이 '침묵의 장기'라 불린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지방간 환자의 79.9%는 증상이 있어서 병원을 찾은 게 아니라 건강검진을 통해 우연히 발견합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사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픈 곳도 없고 일상에 불편함도 없었습니다. 간수치가 정상이어도 지방간이 진행 중인 경우가 있기 때문에, 혈액 검사만으로 안심하기 어렵다는 것도 제가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실제로 한 20대 중반 여성 대학원생은 별다른 증상 없이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소견을 받은 뒤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간 섬유화(Liver Fibrosis) 3단계 판정이 나왔다고 합니다. 간 섬유화란 간 조직이 손상을 반복적으로 받으면서 굳어가는 과정을 말하며, 4단계가 간 경변(Liver Cirrhosis)입니다. 젊고 겉으로 건강해 보인다고 해서 간 내부 상태도 괜찮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방간, 방치하면 어디까지 가는가
이번에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이 여기입니다. 지방간이라고 하면 '좀 관리하면 되겠지'라고 가볍게 넘기기 쉬운데, 진행 경로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지방간을 방치하면 일부에서는 지방간염(Steatohepatitis)으로 넘어갑니다. 지방간염이란 간에 쌓인 지방이 염증을 일으키는 단계로, 이 상태가 지속되면 간 섬유화를 거쳐 간경변, 나아가 간암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지방간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이 간 질환 합병증이 아니라 심혈관 질환이라는 사실입니다. 신장 기능 저하와 각종 암 발생 위험 상승도 지방간과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 20~30대 약 288만 명을 10년간 추적한 연구에서는 지방간 질환이 있는 사람의 50세 이전 조기 심근경색 발병 위험이 일반인보다 약 20%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촌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수치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다행인 것은 초기에 발견했다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체중을 현재의 5%만 줄여도 간 내 지방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7~10% 감량에 성공하면 지방간염을 동반한 경우에도 간 내 염증이 호전될 수 있습니다. 액상 과당을 끊고 물과 무가당 음료로 바꾸는 것, 정제 탄수화물 대신 채소와 단백질의 비중을 높이는 것,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현재로서 가장 효과가 입증된 방법입니다. 사촌도 진단을 받은 뒤부터 배달음식을 줄이고 퇴근 후 짧게라도 걷기 시작했는데, 제 경험상 이런 작은 변화가 쌓이면 실제로 수치가 달라지는 것을 주변에서 몇 번 봤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술을 전혀 안 마셔도 지방간이 생길 수 있나요?
A. 네, 생깁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 최근에는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이라고 부르는 유형이 바로 그 경우입니다. 음주 여부와 무관하게 비만, 인슐린 저항성, 고지혈증, 고탄수화물 식단 등이 원인이 됩니다. 국내 성인의 24.1%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흔한 질환입니다.
Q. 마른 편인데도 지방간 검사를 받아야 하나요?
A. 받는 것이 좋습니다. 마른 지방간은 전체 지방간의 20~30%를 차지하며, 아시아인은 정상 체중에서도 지방간이 생기는 유전적 위험 인자의 빈도가 서구인보다 높습니다. 체중계 숫자보다 내장 지방 비율과 근육량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Q. 건강검진에서 간수치가 정상이면 지방간이 없다고 봐도 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간수치(ALT, AST)가 정상 범위여도 지방간이 진행 중인 경우가 있습니다. 간 초음파 검사나 간 섬유화 검사를 병행해야 정확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방간 소견을 받았다면 전문의와 추가 검사 여부를 상담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Q. 지방간은 얼마나 빼야 좋아지나요?
A. 현재 체중의 5%만 줄여도 간 내 지방이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지방간염이 동반된 경우에는 7~10% 감량이 간 내 염증 호전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급격한 감량보다 식습관 개선과 운동을 병행하는 꾸준한 방식이 더 안전하고 효과적입니다.
Q. 지방간이 있으면 얼마나 자주 검사를 받아야 하나요?
A. 최소 6개월에서 1년 간격으로 간 기능 혈액 검사, 혈당 검사, 중성지방 검사, 간 섬유화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 것이 권장됩니다. 본인의 위험도와 동반 질환에 따라 주기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담당 전문의와 일정을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
사촌의 지방간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그게 잘못된 반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젊다는 것,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 눈에 띄게 살이 찐 게 아니라는 것이 지방간의 예외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2030에게는 대사이상 지방간이 가장 조용히, 가장 빠르게 스며드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번에 제대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사촌이 말한 "지금 발견해서 다행인 것 같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습니다.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소견을 받는 것은 겁먹을 신호가 아니라, 아직 되돌릴 수 있는 타이밍에 몸이 먼저 알려준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 시작입니다. 저도 이번 일을 계기로 주변 가족들에게 건강검진을 미루지 말라고 이야기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