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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 3기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수술부터 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친구 아버지의 치료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그 전제 자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3기인데 수술을 못 한다. 이 말이 처음엔 포기처럼 들렸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수술불가 판정, 치료 포기가 아니었다
얼마 전 친구와 점심을 먹다가 아버지의 췌장암 3기 진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구는 처음에 3기면 수술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저도 솔직히 그 말이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추가 검사 결과, 암이 주변 혈관과 너무 가까워 바로 수술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암이 3기라고 하면 전이는 없지만 수술로 제거할 수 있는 상태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췌장 주변에는 복강동맥, 상장간막동맥 같은 굵직한 혈관들이 촘촘하게 지나갑니다. 암이 이 혈관을 침윤하거나 바로 옆에 형성되면, 외과적으로 절제하는 것 자체가 위험해집니다. 이런 상태를 '국소 진행성 췌장암(Locally Advanced Pancreatic Cancer, LAPC)'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멀리 퍼지진 않았지만 위치 때문에 손을 대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의료진과 상의해 먼저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수술을 못 한다는 말이 처음엔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말처럼 들렸어"라고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항암치료로 암의 진행을 억제하거나, 반응에 따라 나중에 수술 가능성을 다시 평가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은 뒤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물론 모든 환자가 수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경로 자체가 닫혀 있는 건 아닌 셈입니다.
출처: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췌장암은 전체 암 중 생존율이 낮은 편에 속하며 조기 발견이 어려운 특성이 있습니다. 그만큼 진단 시점에 이미 수술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친구 아버지가 아프고 나서였는데, 미리 알았더라면 친구에게 조금 더 적절한 말을 건넬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항암치료를 2년 해도 크기가 그대로인 이유
친구는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시작한 뒤 정기적으로 CT 검사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몇 차례 검사가 지나도 암 덩어리의 크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친구는 그게 치료가 효과 없다는 뜻인가 싶어 걱정했다고 했는데, 저도 그 말을 듣고 같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후에 알게 된 내용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암 덩어리는 암세포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췌장암의 경우, 덩어리 안에는 암세포 외에도 섬유아세포(Fibroblast)와 면역세포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여기서 섬유아세포란 결합 조직을 만드는 세포로, 암세포 주변에 두꺼운 섬유 기질 환경을 형성해 암세포가 자라기 좋은 배지 역할을 합니다.
이 섬유 기질을 더 직접적으로 활성화하는 건 성상세포(Stellate Cell)입니다. 성상세포란 주로 간이나 췌장에 존재하며, 자극을 받으면 활성화되어 주변 조직을 딱딱하게 만드는 섬유화를 촉진하는 세포입니다. 문제는 이 섬유아세포나 성상세포가 항암제나 방사선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암세포가 줄어들더라도 이 배경 조직이 크게 변하지 않으니, 영상으로 보이는 덩어리의 크기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췌장암에서 이 섬유화 기질(Desmoplastic Stroma)이 두껍게 형성된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지적되어 온 특징입니다(출처: PubMed Central, 췌장암 기질 관련 연구). 제 경험상 이런 설명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친구가 "크기 변화가 없다"는 검사 결과를 들었을 때 덜 흔들렸을 것 같습니다. 크기 변화만이 치료 효과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췌장암 덩어리 안에는 암세포보다 섬유아세포, 면역세포가 더 많을 수 있음
- 성상세포가 활성화되면 섬유화 기질이 두꺼워져 암세포 성장 환경이 만들어짐
- 이 기질 세포들은 항암제·방사선에 반응이 낮아 크기 변화가 잘 나타나지 않음
- 크기 변화가 없다고 해서 반드시 치료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음
파리칼시톨, 섬유화를 겨냥한 보완 치료
친구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췌장암 치료에 대해 더 찾아보다가 파리칼시톨(Paricalcitol)이라는 이름을 접하게 됐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비타민 D 계열 약물이 암 치료와 연결된다는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파리칼시톨이란 활성형 비타민 D 유사체입니다. 일반적인 비타민 D 보충제와는 다르게, 체내에서 이미 활성화된 형태로 작용합니다. 이 약물이 췌장암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앞서 설명한 성상세포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상세포가 비활성 상태를 유지하면 두꺼운 섬유화 기질이 덜 형성되고, 그 결과 항암제가 암세포에 더 잘 도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그럼 그냥 비타민 D 많이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파리칼시톨은 일반 비타민 D 보충제와 달리 의약품으로 분류되며, 용량과 투여 방식이 다릅니다. 임의로 복용량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정보를 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이게 내 상황에 해당되는지"를 전문가에게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물론 파리칼시톨이 모든 췌장암 환자에게 표준 치료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닙니다. 보완 치료의 하나로 검토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절합니다. 다만 기존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가 잘 닿지 않는 섬유화 기질을 간접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3기 환자처럼 오랫동안 항암을 지속해야 하는 경우에 의료진과 함께 논의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췌장암 3기인데 왜 바로 수술을 안 하나요?
A. 일반적으로 3기라고 하면 수술이 가능한 상태를 떠올리지만, 췌장암은 다릅니다. 췌장 주변의 주요 혈관에 암이 붙어 있거나 침윤된 경우, 수술 위험이 너무 높아 항암치료를 먼저 진행합니다. 이를 국소 진행성 췌장암(LAPC)이라고 하며, 수술 불가가 곧 치료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Q. 항암치료 중인데 CT 결과에 크기 변화가 없어요. 치료가 효과 없는 건가요?
A. 크기 변화가 없다고 해서 반드시 치료가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췌장암 덩어리 안에는 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섬유아세포와 성상세포가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조직들이 유지되기 때문에 영상에서는 크기가 그대로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당 의료진과 영상 외에 다른 지표들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파리칼시톨은 일반 비타민 D 보충제와 다른가요?
A. 네, 다릅니다. 파리칼시톨은 활성형 비타민 D 유사체로, 시중에서 구매하는 비타민 D 보충제와는 작용 방식과 용량이 전혀 다른 의약품입니다. 임의로 비타민 D를 고용량 복용하는 것이 같은 효과를 내지는 않으며,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한 후 사용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Q. 췌장암 3기 환자가 항암을 오래 지속하면 내성이 생기나요?
A. 항암제 내성은 장기 치료에서 실제로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섬유화 기질을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가 내성 발생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파리칼시톨처럼 섬유화 기질을 간접적으로 억제하는 보완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내성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개인차가 있으므로 주치의와 함께 논의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결론
친구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가장 많이 바꿔야 했던 건 "암 치료 = 수술"이라는 공식이었습니다. 췌장암 3기는 4기 전이암도 아닌데 수술을 못 하고, 항암치료를 2년 가까이 이어가는 분들도 있다는 사실이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섬유아세포, 성상세포, 섬유화 기질이라는 개념을 알고 나니 그 이유가 구조적으로 이해가 됐습니다.
파리칼시톨이 표준 치료를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항암치료가 잘 닿지 않는 영역을 보완할 수 있는 옵션을 의료진과 함께 검토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오래 기억하는 친구의 말, "아빠랑 밥 먹는 게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어"라는 말처럼, 치료의 긴 과정에서 환자 곁에 있는 가족의 일상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