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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췌장암 환자에게 특별한 음식이 따로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으셨을 때, 친구는 차가버섯이며 영지버섯이며 몸에 좋다는 걸 닥치는 대로 사다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돌아온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입맛이 없어서 몇 숟가락도 채 드시지 못했고, 챙겨드린 음식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췌장암 환자의 식습관,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일반식이 정답이었습니다
친구가 처음에 가장 많이 했던 일이 이른바 '항암 식품' 검색이었습니다. 브로콜리, 토마토, 양배추즙, 차가버섯 추출액까지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저도 옆에서 "그거 좋다더라"를 거들었으니, 솔직히 제가 부추긴 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영양 상담을 받고 난 뒤 친구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상담사가 전한 말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차가버섯을 요리해서 반찬으로 드신 적 있으세요? 영지버섯을 밥상에 올려서 드세요?" 그 질문에 친구도, 저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평소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골고루 드시는 것이 오히려 정답에 가깝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생각이 갈렸습니다. 특별한 식재료가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느낀 건 달랐습니다. 먹지 못하는 음식이 아무리 몸에 좋아도 실제로 삼키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입맛이 없는 환자에게 낯선 추출물보다 익숙한 된장찌개 한 그릇이 더 현실적인 영양 공급원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출처: 국립암센터에서도 암 환자의 식사 원칙으로 특정 식품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특정 보조식품에 의존하기보다 균형 잡힌 일반식을 유지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몸에 좋다는 한 가지에 집중하다가 전체 영양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강조합니다.
- 차가버섯, 영지버섯 등 비식품 보조제는 일반 반찬으로 섭취하기 어려우므로 식단의 중심에 두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단백질 보충을 위한 영양 음료(액상 영양 보조제)는 식사량이 부족할 때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면 효과적입니다
- 종합 비타민, 단백질 보충제 등은 음식으로 섭취가 어려울 때 보충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소화효소가 왜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수술 후 한동안 이상한 증상을 겪으셨다고 합니다. 변에 기름이 둥둥 뜨고, 방귀 냄새가 너무 심해서 외출이 두려울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처음에 식중독인 줄 알았다고 했고,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원인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것은 지방변(脂肪便)과 관련된 증상이었습니다. 지방변이란 지방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채 대변으로 배출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췌장 수술, 특히 원위부 췌장 절제술(distal pancreatectomy)이 진행되면 췌장의 절반 이상을 제거하게 됩니다. 여기서 원위부 췌장 절제술이란 췌장의 꼬리 쪽을 잘라내는 수술로, 머리 쪽을 절제하는 수술보다 회복이 빠르고 합병증이 적은 편입니다. 그런데 수술 후에는 소화액, 특히 지방 분해 효소인 리파아제(lipase) 분비량이 줄어듭니다. 리파아제란 지방을 소화 흡수 가능한 형태로 분해하는 효소입니다. 이 효소가 부족해지면 기름진 음식을 먹었을 때 지방이 그대로 배출되고, 냄새가 심한 대변이나 방귀가 생깁니다.
친구 아버지는 처방받은 췌장 효소 소화제, 즉 외인성 췌장 효소 보충제(pancreatic enzyme replacement therapy, PERT)를 복용하고 계셨는데, 증상이 심할 때는 용량을 조금 올린 뒤 나아지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PERT란 췌장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소화 효소를 약물로 보충하는 치료법입니다. 이걸 알기 전까지는 기름진 음식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소화 효소가 충분하면 삼겹살 같은 음식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만 고기를 직화로 굽는 방식, 즉 불꽃이 직접 닿아 탄 부분이 생기는 조리법은 자제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무조건 고기를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근육량 유지가 항암 치료 효과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출처: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암 환자의 근감소증(sarcopenia)은 치료 반응률과 생존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단백질과 열량 섭취를 충분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근감소증이란 근육량과 근육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감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혈당 관리, 무엇을 끊기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달랐습니다
친구가 또 한 가지 걱정하던 것이 혈당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수술 후 혈당 수치가 불안정하게 오르내리셨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처음에 밥도 줄이고 과일도 끊어야 하나 싶었다고 했는데, 저도 그게 맞는 방향이라고 거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도 조금 다른 시각이 있었습니다. 탄수화물을 완전히 끊는 방향이 맞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는 전체 섭취 칼로리의 절반 정도를 탄수화물로 채우되 혈당지수(GI, Glycemic Index)가 높은 식품을 피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인 관리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혈당지수란 특정 식품이 혈당을 얼마나 빠르게 올리는지를 수치화한 지표입니다. 예를 들어 사탕, 탄산음료, 흰 설탕 같은 단순당은 혈당을 급격히 올리기 때문에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지만, 쌀밥은 적정량이라면 먹어도 됩니다.
친구 아버지가 탄산음료를 좋아하셨는데, 제로 칼로리 탄산으로 바꾸신 뒤 혈당 변화 폭이 줄었다고 했습니다. 이 경험에서 저는 '무엇을 완전히 끊는다'보다 '어떤 형태로 먹느냐'가 실질적인 차이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한 말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요즘은 아빠가 밥 한 그릇을 다 드시는 것보다 맛있게 몇 숟가락이라도 드시는 게 더 기뻐." 그 한 마디를 들었을 때 저도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좋은 음식을 '얼마나' 먹느냐 이전에, 그냥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굉장히 소중한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췌장암 수술 후 삼겹살 먹으면 안 되나요?
A. 고기 자체를 끊어야 한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삼겹살처럼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은 췌장 수술 후 소화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처방받은 소화효소제를 충분히 복용하면서 소화 상태를 보며 조절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직화로 태운 부분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Q. 변에 기름이 뜨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이는 지방변 증상으로, 췌장 수술 후 소화 효소 분비가 줄어들면서 지방이 흡수되지 못해 나타납니다. 처방된 췌장 효소 소화제(PERT)의 용량을 의료진과 상의해 조정하면 증상이 개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의로 약을 끊거나 용량을 바꾸지 말고 반드시 담당 의사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췌장암 환자에게 차가버섯이나 영지버섯이 효과 있나요?
A. 이런 보조 식품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현재까지 췌장암 치료 효과를 뒷받침하는 임상적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식품들은 일반 반찬처럼 식탁에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균형 잡힌 일반식 대신 이것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전체 영양 섭취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Q. 췌장암 수술 후 당뇨가 생기면 암 재발과 관계있나요?
A. 수술 후 새롭게 당뇨가 생기거나, 원래 잘 조절되던 혈당이 갑자기 불안정해지는 것은 췌장 기능 변화와 관련된 현상이지 재발의 직접적 신호는 아닙니다. 다만 반대로 당뇨가 갑작스럽게 나타나거나 악화될 때 췌장 이상을 의심해볼 수 있기 때문에, 정기적인 추적 관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Q. 제로 탄산음료는 췌장암 환자도 마셔도 되나요?
A. 칼로리가 0인 제로 탄산음료는 혈당에 미치는 영향이 일반 탄산음료보다 훨씬 작아서 마셔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인공감미료에 대한 반응은 개인차가 있으므로, 복용 중인 약이나 소화 상태와 함께 담당 의사에게 확인해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결론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가장 크게 바뀐 생각은 이것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좋은 음식이란 특별한 효능이 있는 음식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먹을 수 있고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앞으로는 가족이 아프면 차가버섯부터 검색하는 대신 어떤 음식이 편하게 넘어가는지 먼저 물어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친구 아버지가 항암 치료를 잘 마치시고,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를 나눌 수 있는 날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췌장암은 어려운 병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의료진과 함께 끝까지 가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