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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찌는 건 의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직접 체중이 늘어나고 빼려고 해보니, 그 말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비만의 절반 이상은 개인이 조절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의지력만으로 안 된다는 게 과학적으로 확인된 이야기입니다.

비만 원인, 알고 보니 게으름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조금만 덜 먹고 더 움직이면 되는데 왜 못 해?" 저도 살이 찌기 전까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체중이 늘어나는 사람을 보면서 '의지가 부족한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쳐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2020년, 저명한 의학 학술지인 Nature Medicine에 이례적인 공동 성명서가 실렸습니다. 논문이나 데이터가 아닌 성명서가 이 학술지에 실린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습니다. 내용은 비만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출처: Nature Medicine). 연구자들이 이런 성명까지 낸 이유가 있었습니다. 비만의 원인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조절할 수 있는 식사량과 운동량은 비만에 기여하는 요인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유전적 요인, 장내 미생물, 식욕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호르몬,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여기서 장내 미생물이란 우리 소화기관에 사는 수십 조 개의 미생물로, 영양소 흡수 방식과 식욕 신호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습니다.
- 유전적 요인: 체중 설정값과 지방 저장 방식에 직접 영향
- 식욕 조절 호르몬(렙틴·그렐린): 포만감과 허기를 뇌에 전달하는 신호 체계
- 장내 미생물 구성: 영양소 흡수 효율과 식욕 신호에 관여
- 환경·스트레스: 코르티솔 분비를 높여 지방 축적을 촉진
항상성이 다이어트를 방해하는 이유
체중을 줄여보려고 며칠 굶다시피 먹고 운동을 시작해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 며칠은 체중계 숫자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배가 더 고프고, 평소보다 더 먹게 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자책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몸의 정상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이것을 항상성(homeostasis)이라고 합니다. 항상성이란 생명체가 외부 환경이 변해도 내부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생물학적 기전입니다. 체온을 36.5도로 유지하거나 혈당을 일정 범위 안에 두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문제는 몸이 현재 체중도 일종의 '기준값'으로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급격하게 체중을 줄이려 하면 몸은 이것을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면, 기초대사율이 떨어지고, 포만감을 주는 호르몬인 렙틴(leptin)은 줄어들며,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인 그렐린(ghrelin)은 증가합니다. 여기서 렙틴이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뇌에 '배가 찼다'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하고, 그렐린은 위에서 분비되어 '배고프다'는 신호를 전달하는 호르몬입니다. 더 나아가 특정 음식에서 오는 쾌감, 즉 보상 반응까지 높아집니다. 마치 중독 반응처럼 자신도 모르게 더 먹게 되는 겁니다.
장기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영양 계획 없이 의지력만으로 극단적인 체중 감량을 시도한 사람들을 2~5년간 추적한 결과,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체중이 더 많이 늘어난 사례가 보고됐습니다(출처: NIH 국립당뇨소화기신장질환연구소). 제 경험상도 이건 좀 다릅니다. 단기간에 무리해서 줄인 체중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왔고, 돌아올 때는 항상 원래보다 조금 더 늘어 있었습니다.
만성질환 관리처럼 접근해야 달라집니다
비만을 경험하면서 제가 가장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비만은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뇨병 환자에게 "의지력 있으면 혈당 관리 되잖아요"라고 하지 않듯이, 비만도 같은 방식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비만을 만성질환(chronic disease)으로 분류하는 흐름이 의학계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만성질환이란 수개월 이상 지속되며 완치보다는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질환을 말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집니다. 당뇨도 생활습관 교정을 먼저 시도하고, 그것만으로 조절되지 않으면 약물 치료를 병행합니다. 비만도 마찬가지입니다. 생활습관 교정이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 약물이나 행동 치료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제가 직접 바꿔본 것들 중에서 오래 지속된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저녁을 너무 늦게 먹지 않는 것, 배달음식 횟수를 줄이는 것, 식사 후에 잠깐이라도 걷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완벽하지 않아도 '오늘 망했으니 포기'를 하지 않는 것, 그게 생각보다 중요했습니다. 한 번에 큰 변화를 만들려는 것보다 몸이 새로운 기준값에 천천히 익숙해지도록 하는 방향이 실제로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비만 낙인이 문제인 이유 중 하나는 낙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2차 피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존감 저하, 우울감, 섭식 장애(eating disorder)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섭식 장애란 음식 섭취 패턴이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변하는 상태를 말하며, 폭식증이나 거식증이 대표적입니다. 미국의 경우 인구의 약 10%가 섭식 장애를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비만 자체보다 낙인이 만들어낸 스트레스와 섭식 장애로 더 고통받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도 체중계 숫자 하나에 하루 기분이 달라지던 시기가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스트레스가 건강에 도움이 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비만이 의지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포기해도 된다는 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의지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지, 생활습관 관리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단기간의 혹독한 다이어트보다 몸이 새로운 기준값에 서서히 적응하도록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Q. 항상성 때문에 체중 감량이 어렵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A. 몸이 위협으로 느끼지 않도록 천천히,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유지하면서 줄여나가는 것이 핵심입니다. 급격한 칼로리 제한은 오히려 기초대사율을 낮추고 식욕 호르몬을 자극합니다. 필요하다면 전문 의료진과 함께 영양 계획을 세우는 것을 권합니다.
Q. 비만 치료에 약물이 꼭 필요한가요?
A.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당뇨처럼 생활습관 교정이 우선이고,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 약물 치료를 고려하는 단계적 접근이 일반적입니다. 비만의 정도와 동반 질환 여부에 따라 달라지므로 전문가와 상담 후 결정하는 것이 맞습니다.
Q. 비만 낙인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A. 실제로 영향을 미칩니다. 낙인으로 인한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코르티솔 분비를 높여 지방 축적을 촉진하고, 자존감 저하와 우울증, 섭식 장애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비만 자체를 치료하는 것만큼 심리적 부담을 줄이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결론
체중관리를 시작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바꾼 것은 운동 루틴이 아니라 바라보는 시각이었습니다. '살 빼기'가 목표가 아니라 '계단 올라가도 덜 힘들고, 건강검진 결과를 덜 걱정하는 몸'이 목표라고 생각하니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비만을 만성질환으로 바라보고,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실제로 더 오래 지속 가능한 방향이었습니다.
비만 낙인은 당사자에게 심리적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올바른 치료로 나아가는 길을 막습니다. 의지력 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몸의 생리적 반응을 이해하고 전문가와 함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출발점입니다. 스스로를 탓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 관리 방향을 찾는 데 써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