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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받은 약봉지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화학 약품이 간이나 콩팥에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손이 쉽게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대로 알고 나서는 오히려 걱정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약을 먹는 것보다 먹지 않는 쪽이 훨씬 더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당뇨약 거부감, 약 먹기가 두려웠던 이유
처음 혈당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약까지 먹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밥 양을 줄이고 저녁에 걷기만 해도 충분히 잡힐 거라 믿었고, 다음 검사에서는 수치가 내려와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재진료에서 의사 선생님이 약물치료를 꺼냈을 때, 그 순간부터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인터넷 검색이었습니다. 당뇨약 부작용을 찾아볼수록 걱정만 늘었고, '이거 간에 무리 가는 거 아닌가', '콩팥이 나빠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반복됐습니다. 그 심리가 민간요법이나 건강기능식품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불안의 방향은 처음부터 잘못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당뇨약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기까지 통상 10년 이상이 걸립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실험실 데이터부터 동물 실험, 그리고 1상·2상·3상으로 나뉘는 임상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비로소 허가가 납니다. 여기서 임상시험이란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약의 효과와 장기적인 안전성을 단계별로 검증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거친 약이 검증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보다 안전성이 낮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 충격이었던 것은 약 복용 여부가 10년 후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였습니다. 처음 당뇨를 진단받은 수만 명을 11.4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처방약을 80% 이상 복용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대혈관 합병증이 24% 줄었고 사망률은 28%나 낮았습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연구팀이 국내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한 결과입니다. 처음 1년의 복약 습관이 그 이후 10년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뇨약 종류, 이름만 외우면 오히려 모릅니다
진료실에서 약 이름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남는 게 없었습니다. 메트포르민, DPP-4 억제제, SGLT2 억제제… 영어 약어만 연달아 나오면 그냥 '알아서 주시겠지' 하고 넘기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찾아보니, 작동 원리를 알고 나면 약이 훨씬 더 납득이 됐습니다.
당뇨약은 크게 혈당을 조절하는 경로에 따라 구분됩니다. 가장 오래되고 지금도 1차 치료제로 쓰이는 메트포르민은 개발된 지 70년이 넘었습니다. 근육과 지방 세포에서 포도당이 잘 흡수되도록 돕고, 밤 사이 간에서 포도당을 과잉 생산하는 것을 억제합니다. 당뇨가 생기면 혈당이 충분히 높은 상태에서도 간이 밤새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탓에 아침 공복 혈당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는데, 메트포르민이 이 부분에 작용합니다.
DPP-4 억제제는 식사 후 장에서 분비되는 인크레틴 호르몬인 GLP-1의 효과를 오래 유지시키는 약입니다. 여기서 GLP-1이란 음식을 먹으면 장에서 분비돼 췌장에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인데, 원래는 몇 분 안에 분해됩니다. DPP-4 억제제는 이 분해 효소를 억제해 GLP-1이 하루 종일 작용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혈당이 정상 이하로 떨어지면 효과를 내지 않기 때문에 저혈당 위험이 낮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각광받는 SGLT2 억제제는 작동 방식이 독특합니다. 소변으로 포도당을 직접 배출시키는 약인데, 쉽게 말해 하루에 밥 한 공기 분량인 약 300칼로리에 해당하는 당을 소변으로 내보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혈당을 낮추는 약으로 개발됐지만, 이후 연구에서 콩팥병 진행을 40% 줄이고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을 약 30% 감소시키는 효과가 확인됐습니다(출처: 대한당뇨병학회). 콩팥이나 심장이 좋지 않은 분께는 오히려 그 장기를 보호하는 약이 되는 셈입니다.
- 메트포르민: 간에서의 포도당 과잉 생산 억제, 근육·지방의 포도당 흡수 촉진. 70년 역사의 1차 치료제
- DPP-4 억제제: GLP-1 분해 효소 억제로 인슐린 분비 촉진. 저혈당 위험이 낮음
- SGLT2 억제제: 소변으로 포도당 배출. 콩팥 보호 및 심부전 입원율 감소 효과 입증
- GLP-1 증강제(인크레틴 증강제): 주사제 형태로 혈당 강하 효과 탁월, 체중 감소 효과. 위고비·마운자로 등이 이 계열
- 인슐린: 고혈당이 극도로 심하거나 췌장 기능이 크게 저하된 경우 사용. 췌장을 직접 대체하는 호르몬
일반적으로 신약이 나오면 무조건 더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중요한 것은 어떤 약이 나에게 맞느냐입니다. 나이, 공복 혈당과 식후 혈당 중 어느 쪽이 더 높은지, 비만 여부, 심장·콩팥·간 상태, 췌장 기능, 그리고 경제적 부담까지 모두 고려해야 처방이 결정됩니다. 누에가루 추출물로부터 합성해 개발된 아카보스(식후 혈당을 낮추는 약)의 경우 한 알에 100원 수준에 건강보험까지 적용되는 반면, 비슷한 효과를 내세우는 일부 건강기능식품은 몇 배 이상의 비용이 들기도 합니다.
생확 습관 실제로 달라진 것들
복용을 시작한 첫 며칠은 몸의 작은 변화에도 굉장히 예민해졌습니다. 속이 조금 불편하면 '약 때문인가?' 싶었고, 평소보다 피곤해도 약부터 의심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약 자체보다 약을 먹는다는 심리적 긴장이 오히려 몸을 더 예민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했던 생각은 '약을 먹으니까 이제 조금 먹어도 되겠지'라는 안일함이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마음 한편에 그런 기대가 있었는데, 약은 식습관과 운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곧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오히려 약을 챙겨 먹는 시간이 생기면서 제가 혈당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 의식하게 됐습니다. 그게 식단과 걷기를 꾸준히 이어가는 데에 일종의 리마인더 역할을 해줬습니다.
당화혈색소(HbA1c)라는 개념도 이때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당화혈색소란 최근 2~3개월간의 평균 혈당 수준을 반영하는 지표로, 혈당 관리가 얼마나 잘 됐는지를 한 번에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하루하루 혈당 숫자에만 집중하다가 이 수치를 기준으로 추이를 보게 되면서, 관리의 방향이 더 명확해졌습니다.
약 복용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도 생각보다 품이 들었습니다. 외출했다가 약을 집에 두고 온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적도 있었고, 오늘 먹었는지 순간 헷갈린 날도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약을 두고 먹은 날은 칸을 넘기는 방식으로 확인하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 꽤 실용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것이 2~3주가 지나면서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약을 바라보는 시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뇨약을 먹기 시작하는 것을 건강관리에 실패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 생각은 틀렸습니다. 약을 먹는 것 자체보다 혈당이 높은 상태를 방치하는 것이 심근경색, 뇌졸중, 신부전으로 가는 더 빠른 길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당뇨약을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평생 먹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혈당 조절 상태와 생활습관 개선 정도에 따라 약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나이가 들면서 췌장 기능이 저하돼 약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과이며, 이를 관리 실패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임의로 끊기보다 주치의와 상의해 조절하는 것이 맞습니다.
Q. 당뇨약이 간이나 콩팥에 부담을 준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약이 간과 콩팥에 해롭다는 인식이 있지만, 제 경험상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SGLT2 억제제 같은 최근 당뇨약은 콩팥병 진행을 40% 줄이고 지방간 보호 효과까지 입증된 경우도 있습니다. 식약처 허가 과정에서 장기 안전성이 검증된 약이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보다 안전성 측면에서 불리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Q.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신약이 더 좋은 건가요?
A. GLP-1 증강제 계열인 이 약들은 혈당 강하 효과와 체중 감소 면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비용 부담이 크고, 메스꺼움·구토 등의 위장관 부작용도 있습니다. 신약이 무조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은 아니며, 오래된 약이 본인 상태에 더 잘 맞는 경우도 충분히 있습니다.
Q. 당뇨약 먹으면 식단 관리 안 해도 되나요?
A. 저도 처음에 그런 기대를 가졌습니다만, 약은 식습관과 운동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생활습관 개선이 기본이 되어야 처음 처방받은 약을 늘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약을 먹기 시작했더라도 식단과 운동 루틴은 그대로, 혹은 더 적극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합니다.
결론
약봉지를 식탁에 올려두고 망설이던 그 순간을 돌아보면, 제가 두려워했던 것은 사실 '약'이 아니라 '당뇨 환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약을 먹는다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내 몸 상태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습니다.
당뇨약에 대해 제가 확인한 것은 이렇습니다. 검증된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10년 후 사망률을 28% 낮출 수 있으며, 최근 나온 약들 중에는 오히려 콩팥과 심장을 보호하는 효과까지 입증된 것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송이나 주변에서 들은 '특효약'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주치의와 상의해 나에게 맞는 약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을 꾸준히 챙겨 먹는 습관, 식단, 운동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도 제 경험이 확인해 준 사실입니다.